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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관리자   11.02.16 1911

조선 제6대왕 단종릉 - 장릉

일반정보

  • 소재지 : 영월읍 영흥리 1086, 1087, 산 131-1외 10
  • 문의처 :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 033) 370 - 2542
    장릉안내 : 033) 374-4215

조선 제6대왕 단종릉 - 장릉(莊陵)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며 발길 닿는 곳마다 단종의 한과 넋이 남아있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사약을 받고 승하한 관풍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시를 남겼던 자규루, 그리고 주검이 묻힌 장릉 등에서 생생한 단종의 한과 넋을 느끼어 본다.

배식단사 이미지입니다.
배식단사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패(位牌)를 모셔놓은 곳이다. 매년 한식날 단종제향후 제사를 지낸다.

 
영천 이미지입니다.
영천

정조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보통때는 조금씩 샘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날 제사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솟아 올랐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정려각 이미지입니다.
정려각

정려각은 1726년(영조 2년)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문이다. 비석은 1833년(순조 33년)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 다시 증축하였으며, 1876년 (고종 13년)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 하여 1879년 (고종 16년) 비석에 있는 것을 다시 고쳤다.

 
정자각 이미지입니다.
정자각

한식날인 단종제향때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拜位廳)이라 한다.

 
단종비각 이미지입니다.
단종비각

1698(숙종24년)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고 영조 9년에 비각과 수복실, 정자각을 세웠다. 비석전면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라 쓰여있다.

 
배견정 이미지입니다.
배견정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 이 배견정은 장릉(裝陵)에서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남하하던 거북이가 머리를 번쩍 들고 맑은 하늘을 바라 보는 것 같은 형상을 한 언덕 위에 네모진 아담한 정자가 있으니 배견정이라 한다.
배견정은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녀들의 넋이 단종묘소를 찾아와 죽어서 두견이 되었다는 단종대왕 영혼 앞에서 울며 절하던 곳이라 하여 배견정이라 이름 지은 것으로서 이 정자는 1792년 사육신의 유일한 혈손인 박팽년의 현손인 박기정 부사(朴基正 府使)가 창건하였다.
단종을 두견새에 견주어 말하 것은 여기서 연유된다.

옛적에 중국 촉나라의 망제가 그 신하인 "요령"에게 임금의 자리를 빼앗기고 궁궐을 쫓겨나서 서선에 숨어 살면서 복권되기를 기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객사하였다.
이에 촉나라에 돌아가지 못한 그 원귀가 새가 되어 "촉혼귀" "촉혼귀"하며 울었으므로 그 새를 두견새라 하였다고 한다. 이 새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리워지는데 두우, 두혼, 촉혼, 촉백, 자규 등이다. 왕위를 빼앗기고 객지에서 죽은 왕의 영혼을 비유하는 말이다.

 
낙촌비각 이미지입니다.
낙촌비각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년 5월 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 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길이 없어 풍설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군리(郡吏)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온 세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신하가 둘러서 모시고 있었다.
임금을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 번째 있던 이가 살려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 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 후부터는 군수가 부임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단종역사관 이미지입니다.
단종역사관

단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
잊혀지고 왜곡된 단종의 역사를 바로 잡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건립된 단종 역사관은 단종의 즉위식에서부터 사약을 받는 모습 등 단종의 일대기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식으로 모형전시되어 있다.

 
장릉의 가을 이미지입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2009.06.27)
17세의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한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부왕인 문종이 일찍 죽어 12세에 임금이 되었으마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세조3년) 결국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단종이 승하하셨을 때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 호장 엄홍도가 시신을 거두어 모신 곳이 바로 장릉이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개장시간 : 동계: 09:00~18:00 / 하계: 09:00~19:00
이용요금
이용요금
구분 어린이 청소년.군인 성인 비고
개인 1200 1200 1400 노인(65세이상) 무료
단체 800 800 1200 30인이상
군민(개인/단체) 600(400) 600(400) 700(600)
주차장 이용안내
주차장 이용안내
구분 요금 비고
소형(승용차) 0 무료
대형(버 스) 0 무료
교통안내
자가용
|서울 |
◎ 경부.중부고속국도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제천I.C(38번국도) → 서영월 나들목 → 장릉방향 우회전(59번국도) → 장릉
◎ 경부.중부고속국도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신림I.C(88번국도) → 주천(영월방향) → 북쌍삼거리(좌회전) → 영월삼거리 → 장릉
대중교통
영월~장릉 시내버스 07:00-20:00, 20분 간격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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